31 · 관찰 가이드 · 약 5분 읽기
정림사지, 탑의 나이와 글의 나이
백제의 석탑에 당의 승전 기록이 새겨졌습니다. 건축물·비문·탁본·기와에 담긴 서로 다른 시간을 구분하며, 한 장소의 기억이 바뀌는 과정을 읽습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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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6개의 단락
같은 표면에 포개진 두 사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의 건축물이고, 그 첫 층에는 백제를 멸망시킨 당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의 돌 표면에서 서로 다른 주체와 사건을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설은 석탑을 백제 사비 도성 중심 사찰의 건축물로 설명하면서, 660년에 당이 승전을 기리는 글을 새긴 과정을 별도로 다룹니다. 따라서 비문에 적힌 연도를 곧 탑의 건립 연도로 읽으면 두 사건이 뒤섞입니다. 먼저 탑을 세운 일, 다음으로 기존 탑에 글을 새긴 일을 나누어 보세요. 겉으로 하나인 대상도 만드는 시간과 사용하며 의미를 바꾼 시간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집니다.
참고 자료 [1]
승리한 쪽의 문장을 읽기
국립중앙박물관은 대당평백제국비명의 탁본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해설에 따르면 글은 당과 신라가 함께 사비성을 함락한 일, 백제의 왕과 신하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실 등을 기록합니다. 이를 읽을 때 중요한 질문은 누가 무엇을 남기려 했는가입니다. 비문은 사건을 접하는 귀중한 자료이면서 당의 승리를 기념하는 목적을 가진 글입니다. 쓰인 내용의 역사적 가치와 글을 쓴 쪽의 입장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탑의 중심부에 기록을 남겼다는 장소 선택도 이 목적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세요. 건축물은 글을 담는 바탕이 되었고, 글은 사람들이 그 건축물을 부르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참고 자료 [2]
종이에 옮겨진 돌의 글자
박물관의 소장품 정보에서 대당평백제국비명 탁본은 재질이 종이이며 시기는 조선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글이 전하는 사건은 660년인데, 소장품의 시기는 그보다 뒤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박물관이 분류하는 대상은 석탑 자체나 최초 비문이 아니라 글자를 종이에 옮긴 탁본입니다. 원래 기록의 작성 시점과 기록을 떠낸 매체의 제작 시점은 일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탁본은 원문을 읽는 통로이면서 그 원문이 후대에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소장품 제목만 읽지 않고 재질과 시대를 함께 보면, 오래된 글자를 보존하고 수집해 온 또 하나의 역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참고 자료 [2]
기와 한 조각이 알려준 사찰 이름
국가유산 지식이음은 정림사지의 발굴에서 정림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왔고, 그 기록을 통해 사찰의 이름을 알게 된 과정을 소개합니다. 이 명문 기와의 연대는 1028년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백제 석탑을 만든 해와도, 당의 승전 기록을 새긴 해와도 다릅니다. 사찰 이름을 전하는 기와가 고려시대 자료라는 점을 놓치면 정림사라는 이름이 백제 창건 때부터 그대로 쓰였다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여기서는 물건과 글이 알려주는 범위를 좁혀 읽는 것이 더 풍부한 이해를 만듭니다. 탑이 살아남은 시간과 그 곁 공간이 다시 쓰인 시간을 따로 따라가면, 절터는 한 왕조의 장면으로만 멈추어 있지 않습니다.
참고 자료 [3]
평제탑이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하기
국사편찬위원회 해설은 정림사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비문의 제목에서 따온 평제탑 또는 평제비라는 명칭이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돌에 새긴 글이 탑 전체의 성격을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글이 백제 정복을 기념한다고 해서 탑 자체가 그 승전을 위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름이 널리 쓰이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먼저 보게 되는 역사도 달라집니다. 지금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라는 명칭으로 부를 때에는 다시 사찰과 백제 건축이라는 맥락이 앞에 놓입니다. 서로 다른 명칭을 비교하는 일은 정답 하나를 외우는 과정에 그치지 않고, 후대의 기억이 무엇을 강조했는지 읽는 과정이 됩니다.
참고 자료 [1]
연표를 물건별로 나누어 적기
석탑, 첫 층의 비문, 명문 기와, 박물관의 탁본을 각각 한 줄씩 적어 보세요. 그 옆에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어떤 사건을 말하는지, 그 물건이나 기록의 시기를 무엇으로 아는지 써 봅니다. 하나의 연표 위에 숫자를 차례대로 놓는 방법과 달리 이 표는 서로 다른 자료가 맡은 역할을 보여줍니다. 탑의 형태를 연구하는 질문은 비문의 정치적 언어를 읽는 질문과 다르고, 탁본을 통해 전승을 살피는 질문도 따로 있습니다. 정림사지를 깊이 읽는다는 것은 이 차이를 지우지 않고 연결하는 일입니다. 같은 돌 앞에서 건축의 시간, 전쟁의 기록, 사찰의 이름, 후대의 수집을 차례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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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정림사지 오층석탑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10&levelId=kc_r100430
- 국립중앙박물관 — 대당평백제국비명 비 탁본, 덕수3128 ↗https://www.museum.go.kr/site/jpn/relic/search/view?relicId=1240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가유산 지식이음 — 정림사지와 1028년 명문 기와 ↗https://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d_idx=148&idx=4&menuIdx=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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