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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 장소 읽기 · 약 4분 읽기

능산리사지, 건물의 관계로 절터를 읽다

능산리사지는 왕릉과 도성의 경계 사이에 놓인 절터입니다. 목탑·금당·공방의 관계와 사리감 기록을 통해, 한 유물 너머의 공간을 읽어 봅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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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4개의 단락
01

왕릉과 도성 사이

부여군은 능산리사지를 ‘능사’라고도 부르며, 나성과 부여 왕릉원 사이 골짜기에 있는 절터로 소개합니다. 나성은 사비 도성의 외곽을 두른 성벽입니다. 군의 해설은 절터 곁의 왕릉들이 사찰의 성격을 이해하는 근거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절터의 위치를 읽을 때는 건물 하나만 보는 대신, 무덤이 모인 곳과 도성의 경계 사이에 놓였다는 관계부터 살펴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2]

02

목탑만 있었던 절이 아니다

박물관 해설에 따르면 이 절에는 목탑과 금당을 중심으로 중문·강당·회랑·공방 등 여러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다른 건물들이 한 절을 이루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다만 건물 목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사람들의 하루나 모든 이동 순서를 복원할 수는 없습니다. 배치 자료를 읽을 때에는 확인된 건물과 상상으로 채운 활동을 나누어 적는 편이 좋습니다.

참고 자료 [1]

03

돌에 남은 날짜가 알려주는 범위

목탑 중심부에서는 석조사리감이 발견됐습니다. 명문에는 창왕 13년, 곧 567년에 왕의 누이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박물관은 이때 목탑 중심기둥을 세우기 위한 작업과 사리감 매납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 날짜는 사리 공양과 관련된 중요한 기준이며, 절터의 모든 건물이 같은 해 완성됐다는 기록은 아닙니다.

참고 자료 [1] [2]

04

읽기 제안: 관계와 단정을 구분하기

박물관은 위치와 명문을 근거로 왕실의 기원을 비는 절, 특히 성왕을 추모하고 왕릉을 관리하던 절이었을 가능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가능성’은 빠뜨리지 말아야 할 말입니다. 공식 해설을 읽으며 출토 위치와 명문 내용에는 밑줄을, 절의 성격에 관한 해석에는 동그라미를 쳐 보세요. 서로 다른 근거가 하나의 설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비교하는 읽기 방법입니다.

참고 자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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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1. 국립부여박물관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https://buyeo.museum.go.kr/rprsPsn/view.do?key=2302150017&rprsPsnCmdtyMngSn=2001010002
  2. 부여군 - 절터로 떠나는 여행, 능산리사지 ↗https://edu.buyeo.go.kr/html/tour/info/info_010203.html

사진과 도면은 위 원문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방문 전 현재 전시 여부와 관람 시간을 소장기관의 최신 안내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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