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 유물 읽기 · 약 5분 읽기
고창 금동신발, 옆면과 바닥에 남은 장식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의 금속판 연결과 바닥 장식을 살핍니다. 발에 착용된 흔적과 지방 지배자의 위세품이라는 해석이 각각 어떤 근거에서 나오는지 구분합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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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안에 남은 몸과 직물
국립전주박물관이 소개하는 고창 봉덕리 금동장식신발의 길이는 약 33센티미터입니다. 길게 뻗은 몸체에는 금속 옆판이 둘러져 있고, 바닥에는 뾰족한 징이 돋아 있습니다. 길이뿐 아니라 발을 감싸는 판과 바닥의 돌출부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신발입니다.
이 신발은 죽은 사람을 위해 무덤에 넣는 껴묻거리였습니다. 안팎에는 작은 직물 조각이 붙어 있었고 오른쪽 신발 안에서는 뼛조각도 확인됐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이를 근거로 망자의 발에 착용된 상태로 묻힌 것으로 설명합니다. 금속 신발의 특이한 외형보다 착용 상태를 더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내부에 남은 뼈와 직물입니다. 신발의 겉면을 볼 때와 안쪽을 살필 때 얻는 정보가 달라집니다.
참고 자료 [1]
한 쌍의 출토품을 비교할 때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신발은 2009년 고창 봉덕리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출토됐습니다. 도굴되지 않은 석실에서 한 쌍이 확인됐으므로, 흩어진 금속 조각을 모은 경우보다 두 신발과 무덤 주인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전시 사진에서 신발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앞에 놓여 있더라도 그 배열을 발견 당시의 위치로 옮겨 읽을 수는 없습니다. 출토 위치는 발굴 당시의 사진과 설명에서 확인할 항목입니다. 반면 소장품 사진은 두 신발의 앞코와 뒤축처럼 대응하는 부분을 비교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한쪽의 윤곽이 다르게 보일 때는 손상된 곳인지, 가려졌거나 비스듬히 보이는 곳인지부터 살피면 좌우의 형태 차이와 사진의 차이를 혼동하지 않게 됩니다.
참고 자료 [2]
판이 만나는 앞코와 뒤축
신발은 바닥판과 좌우 옆판, 발목 둘레를 잡는 깃판으로 이루어집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구성과 바닥의 징을 백제 금동신발의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부드럽게 이어진 윤곽을 판별로 나누면 발목을 두르는 부분과 발을 감싸는 부분, 밑을 받치는 부분이 각각 드러납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옆면의 넓은 금동판을 앞코와 뒤축에서 작은 못으로 고정했다고 설명합니다. 신발의 가운데가 무늬를 펼친 넓은 면이라면 앞코와 뒤축은 판을 모아 붙이는 자리입니다. 사진에서 무늬를 따라가다 가장자리의 못으로 시선을 옮기면 장식면과 결합부를 한꺼번에 살필 수 있습니다. 판의 가장자리가 어디에서 만나고 무엇으로 고정되는지 알면 신발이 여러 부품으로 조립된 입체라는 점도 분명해집니다.
바닥의 무늬와 돌출된 징
옆면뿐 아니라 바닥에도 여러 무늬가 있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용과 새, 사람을 품은 신발이라는 관점으로 유물을 소개합니다. 여기서는 무늬의 종류와 무늬가 놓인 면을 함께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옆면의 장식은 신발을 옆에서 볼 때 드러나지만, 바닥의 장식은 신발 밑면이 보여야 읽을 수 있습니다.
신발을 신은 채 서 있는 모습을 가정하면 바닥은 가려집니다. 그 면에도 무늬를 넣었다는 점은 오늘의 관찰자가 장례용품의 장식 범위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바닥을 찍은 사진에서는 판에 새긴 무늬와 바깥으로 돋은 징을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밑면 안에서도 평평한 장식과 돌출부가 차지하는 자리가 다릅니다. 옆면 사진만으로 신발의 장식을 설명하면 이 부분이 빠집니다.
출토지와 제작 형식을 함께 보는 이유
국가유산청은 봉덕리 신발을 백제 중앙 권력자가 지방의 유력자에게 내려준 위세품일 가능성으로 해석합니다. 위세품은 소유자의 지위와 힘을 드러내는 물건입니다. 이 판단은 금동신발의 형식과 제작 기술, 다른 백제 유물과의 비교에 근거합니다. 특정 왕이 특정 인물에게 하사한 날짜가 적힌 문서가 신발에 남은 것은 아닙니다.
봉덕리라는 출토지는 이 물건이 묻힌 장소를 알려주고, 판의 구성과 장식은 다른 출토품과 비교할 항목을 제공합니다. 둘을 함께 놓아야 지방의 무덤에서 나온 신발을 중앙 권력과 연결하는 해석이 어떻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착용 상태를 살폈던 앞 절과 달리, 이 비교에서는 형식과 기술의 유사성을 통해 신발이 전달된 관계를 검토합니다.
참고 자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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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 국립전주박물관·임혜빈 학예연구사 — 용과 새, 사람을 품은 신발(2023-06-29) ↗https://jeonju.museum.go.kr/gallery.es?act=view&bid=0015&list_no=671&mid=a10105060000
- 국가유산청 디지털 서비스 —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123521240000&ctptUid=1389885973230270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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