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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유물 읽기 · 약 5분 읽기

군수리의 작은 석불, 옷자락 아래와 뒷면의 단서

높이 13.5센티미터의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에는 옷주름과 대좌, 대좌 아래의 고정용 촉이 남아 있습니다. 조각의 표면에서 출발해, 이 불상을 모셨던 공간에 관한 해석으로 이어갑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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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4개의 단락
01

두꺼운 옷이 몸과 받침을 하나로 묶습니다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은 1936년 부여 군수리 절터 조사에서 발견됐습니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재료를 곱돌로 설명합니다. 불상은 네모난 높은 대좌에 앉아 있고, 두 어깨를 덮은 옷은 몸의 윤곽을 감출 만큼 두껍게 표현됐습니다. 가슴의 주름은 U자처럼 내려오고, 무릎 아래의 옷자락은 좌우로 맞선 곡선을 만들며 대좌를 덮습니다.

이 조각에서 몸의 자세를 읽는 길은 살갗이나 근육의 모양을 찾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어깨에서 무릎, 받침으로 이어지는 옷의 흐름이 몸의 위치를 알려 줍니다. 대좌의 윤곽을 먼저 마음속에 그려 보면, 어디까지가 받침이고 어디부터가 그것을 가린 천인지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재료로 삼아 깎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천이 아래로 늘어진 형태를 전달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참고 자료 [1]

02

작은 크기 안에서 강조한 손과 얼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배재호 집필 항목은 높이를 13.5센티미터로 제시하고, 손을 모은 자세를 참선과 관련된 선정인으로 풀이합니다. 머리와 손은 몸에 비해 큰 편이며, 얼굴은 약간 숙이고 몸은 곧게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옷자락이 대좌 앞으로 내려와 가리는 형식에는 상현좌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국가유산 설명은 민머리 위에 작은 육계가 솟은 점, 감은 듯한 눈과 넓은 코, 웃음 띤 입을 짚습니다. 육계는 불상의 머리 위에 솟은 부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면의 중심에는 머리 윗부분, 얼굴, 모은 손이 차례로 놓이고, 아래의 옷자락은 좌우로 퍼집니다. 이를 세로의 집중과 가로의 펼침이 만나는 구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크기를 알고 읽으면 확대된 화면이 주는 인상도 달라집니다. 자에서 13.5센티미터를 찾는 것은 실물을 만나는 일을 대신하지 않지만, 사진 속 얼굴과 손의 세부가 얼마나 작은 범위에 모였는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큰 머리를 미숙한 비례로 평가하기보다, 손과 얼굴에 시선이 모이는 조형의 선택으로 읽습니다. 자세가 전달하는 집중과 몸을 덮는 넓은 옷자락의 안정감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2]

03

완성된 정면과 간단한 뒷면의 차이

같은 집필자는 비교적 평평하게 처리한 뒷면과 대좌 아래의 네모난 촉에 주목합니다. 촉은 다른 곳에 고정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부분입니다. 이 두 단서를 근거로 작은 목제 감실 안에 모셨을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감실은 불상을 넣어 모시는 집 모양의 공간을 말합니다. 목제 감실이 이 불상과 한 벌로 남아 있다는 설명은 아닙니다.

여기서 정면과 뒷면의 차이는 조각의 완성도를 겨루는 기준보다 설치 방식을 생각하게 하는 단서가 됩니다. 사방에서 바라보도록 세운 상과 뒤가 가려지는 공간에 넣은 상에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쪽의 촉 역시 얼굴만 확대한 사진에서는 빠지기 쉬운 정보입니다. 조각을 받침까지 포함한 물건으로 읽을 때, 아름다운 표정에 관한 감상에서 그것을 어떻게 고정하고 모셨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참고 자료 [2]

04

불상 두 점이 나온 절터를 다시 조사하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의 발굴 개요에 따르면 1935~1936년 조사에서는 석조여래좌상과 금동보살입상이 출토됐고, 탑 하나와 금당 하나를 둔 절의 배치가 알려졌습니다. 연구소는 2005년부터 위치와 규모를 다시 확인하고, 이듬해 목탑터와 금당터를 정밀 조사했습니다. 2007년에는 계단·초석·기둥자리와 기단의 흙층, 후대에 금당을 훼손한 구덩이 등을 살폈습니다.

처음 발견한 불상과 뒤에 조사한 건물 흔적은 같은 절을 서로 다른 크기에서 설명합니다. 불상의 형식은 봉안 공간을 생각하게 하고, 건물터는 그 공간이 놓였을 사찰의 구성을 알려 줍니다. 다만 뒤 시기 교란까지 확인된 터에서는 현재 보이는 자리와 원래 설치 자리를 바로 일치시킬 수 없습니다. 조사 과정은 아래 연구소의 발굴 개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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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1. 국가유산청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디지털 원기록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123403290000&ctptUid=13898859700967503005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부여 군수리 석조 여래 좌상, 배재호 집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672
  3.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 부여 군수리사지 발굴 개요 ↗https://www.nrich.go.kr/buyeo/scholarshipUsrView.do?idx=500403&menuIdx=607&project=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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