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 유물 읽기 · 약 5분 읽기
기와에 찍은 작은 글자, 지붕을 만들던 사람들의 표시
기와의 글자는 건물을 꾸미는 무늬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미륵사지의 도장 찍힌 기와를 출발점으로, 제작 틀의 흔적과 생산 관리라는 해석, 통일신라 명문 기와의 차이를 살펴봅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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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5개의 단락
글자보다 먼저 보이는 도장의 모양
국립익산박물관의 백제 날인와 해설에는 한 기와에 도장을 한 번 또는 네 번 찍은 사례가 나옵니다. 도장의 테두리는 원형이나 사각형이며, 안에 든 글자의 수도 한 자·두 자·네 자 이상으로 다양합니다. 글자를 전부 읽기 전에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정보가 있는 셈입니다. 몇 글자인가와 몇 번 찍었는가는 별개의 수입니다. 두 글자가 든 도장을 네 번 찍었다면, 글자 여덟 개가 각각 독립된 표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구별은 깨진 기와에서 특히 유용한 읽기 방식입니다. 남은 글자 하나만으로 원래 도장이 한 글자였다고 생각하기보다, 글자 둘레에 테두리나 다른 획이 이어졌을 자리가 있는지를 먼저 살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안하는 것은 특정 기와의 결손부 복원이 아니라, 도장이라는 단위를 놓치지 않는 비교입니다.
참고 자료 [1]
앞뒤 표면은 서로 다른 제작 과정을 남깁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암키와 항목은 백제 기와 안쪽에서 통쪽 와통과 원통 와통의 흔적이 확인된다고 설명합니다. 와통은 점토의 형태를 잡는 제작 틀입니다. 바깥쪽에서는 점토를 틀에 붙이려고 박자로 두드린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박자에 새긴 무늬가 기와 표면에 옮겨지는 타날입니다. 따라서 안쪽의 틀 자국과 바깥의 반복 무늬는 한 물건의 서로 다른 작업을 알려 줍니다.
암키와를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에는 원통 모양의 날기와를 말린 뒤 여러 장으로 나누는 과정도 있습니다. 연구원은 보통 네 장으로 나눈다고 설명하지만, 다른 분할 방식도 함께 소개합니다. 지금의 납작한 한 조각만 보고 처음부터 그 모양 그대로 빚었다고 여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일반 제작 설명이 미륵사지의 모든 개별 표본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 자료 [2]
지붕에서는 한 장보다 겹친 자리가 중요합니다
암키와는 안쪽 면을 위로 향하게 놓고, 처마 쪽에서 용마루 쪽으로 겹쳐 올려 기왓골을 만듭니다. 연구원은 서로 겹치는 기와가 부딪히지 않도록 모서리를 자르거나 안쪽을 깎아 다듬는 방법도 설명합니다. 한 장만 떼어 놓으면 사소한 모서리와 두께의 차이가 여러 장을 조합할 때는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제작 흔적을 읽는 일은 그래서 표면의 무늬 찾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글자가 있는 평평한 부분, 곡률이 드러나는 단면, 다른 기와와 겹치는 가장자리를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도장의 내용은 아직 알 수 없어도 건축 부재로서 맞물려야 했다는 물건의 성격은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2]
품질 관리라는 설명은 어디까지일까요
익산박물관은 글자를 찍은 기와가 공주·부여·익산의 왕궁, 산성, 사찰 등에 집중된다고 설명합니다. 6~7세기 기와 건물의 수요 증가에 대응한 대량 생산과 품질 관리의 표시였을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다만 모든 글자의 뜻과 날인의 기능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생산을 관리했다는 큰 설명과 특정 글자가 무엇을 가리켰는지는 다른 크기의 문제입니다. 오늘날의 상표·검수 도장·제작자 서명은 모두 물건에 남는 글자지만 역할은 다릅니다. 이 현대적인 비교를 백제의 제도에 곧바로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같은 표식이 얼마나 반복되는지, 서로 다른 건물터에서 함께 나오는지, 도장 외의 제작 흔적도 일치하는지를 묻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같은 절터에서 나온 글자도 시대가 다릅니다
박물관의 별도 항목인 통일신라 명문 기와에는 ‘彌勒寺’, 곧 미륵사라는 절 이름이 등장합니다. 해설은 미륵사 이름이 찍힌 기와가 통일신라시대부터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항목에는 ‘金馬渚官’이 찍힌 기와도 소개되며, 그 출토지가 미륵사지뿐 아니라 왕궁리와 주변 성곽·사찰에도 걸쳐 있다고 합니다.
이 사례를 백제 날인와와 나란히 두면, ‘미륵사지 출토’가 곧 ‘백제 제작’이라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절터라는 장소 이름과 기와의 제작 시대를 구별해야 문자 사용의 변화도 읽힙니다. 이름이 확실히 읽히는 뒤 시기의 기와는 좋은 비교 자료이지만, 그 뜻을 앞 시기의 작은 도장에 소급해서 붙일 수는 없습니다.
참고 자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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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 국립익산박물관 — 백제시대 글자를 찍은 기와 ↗https://iksan.museum.go.kr/kor/html/sub04/0401.html?GotoPage=1&dvs_code=&mng_no=44&mode=V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암키와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idx=23348&menuIdx=567
- 국립익산박물관 — 통일신라시대 글자를 찍은 기와 ↗https://iksan.museum.go.kr/kor/html/sub04/0401.html?GotoPage=2&dvs_code=&mng_no=43&mod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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