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 유물 읽기 · 약 5분 읽기
미륵사지 금판의 문장, 한 날짜에서 모든 중생에게
금제사리봉영기의 핵심은 왕후의 신원과 639년이라는 날짜에만 있지 않습니다. 부처의 사리를 찬탄하는 도입, 왕후가 한 일, 앞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일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읽습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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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4개의 단락
양면에 새긴 글을 세 갈래로 읽기
국립익산박물관은 금제사리봉영기의 내용을 세 부분으로 소개합니다. 부처와 사리에 대한 공경, 왕후의 사찰 건립과 사리 봉안, 왕실과 사람들을 위한 기원입니다. 한 장의 금속판에 새긴 글이지만 서술의 역할은 계속 바뀝니다.
이 글에서는 그 차이를 ‘왜 사리를 모시는가’, ‘누가 무엇을 했는가’, ‘그 일로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세 질문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이는 원래 금판에 소제목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내용을 따라가기 위한 독해의 틀입니다. 날짜가 등장하는 가운데 부분만 발췌하면 행사의 기록이 또렷해집니다. 반대로 처음과 끝까지 읽으면, 그 행사가 어떤 신앙의 언어 속에 놓였는지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고 자료 [1]
여덟 곡의 사리는 이 탑의 수량표가 아닙니다
국역 도입부는 부처가 세상에 응하는 모습을 물에 비친 달에 빗댑니다. 이어 입멸 뒤의 사리 여덟 곡과 오색의 빛을 이야기합니다. 국역의 주석은 여덟 곡을 불교 문헌에 전하는 사리의 양과 연결합니다. 이 대목은 미륵사지에서 수습한 사리의 실측 수량을 적은 목록이 아닙니다.
같은 숫자도 문장 안에서 하는 일이 다릅니다. 봉안된 물건의 개수를 세는 숫자는 어떤 물건을 셌는지가 중요하고, 신앙의 전승을 말하는 숫자는 어떤 이야기를 불러오는지가 중요합니다. 앞부분의 수량을 발굴 결과와 바로 맞추려 하면 글이 말하는 장면 자체가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작은 사리공의 내용물을 설명하기에 앞서, 사리를 모시는 행위를 더 넓은 불교 세계에 연결하는 도입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2]
왕후가 한 일과 뒤에 바라는 일을 구분하기
중간 부분에서는 좌평 사탁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주체로 등장합니다. 재물을 내고 가람을 세운 일에 이어, 기해년 정월 29일 사리를 맞이했다고 적습니다. 이 기해년은 639년으로 풀이됩니다. 그 뒤 문장은 대왕의 장수와 오랜 치세, 불법의 확산을 바라며, 왕후의 마음을 맑은 거울에, 몸을 금강에 연결해 기원합니다. 끝에서는 친속과 모든 중생으로 대상이 넓어집니다.
독해의 분기점은 날짜 다음에 나타나는 ‘바라다’의 역할입니다. 앞에서는 일어난 일을 서술하고, 뒤에서는 그 공덕으로 이루어질 미래를 기원합니다. 긴 수명과 밝은 마음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보고한 성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왕후의 행동 기록으로 읽는 일과 왕실이 내세운 이상을 읽는 일은 함께 가능하지만, 서로 바꿔 쓸 수는 없습니다. 같은 인물이 문장 속에서 행동의 주체였다가 기원의 대상이 된다는 변화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참고 자료 [2]
193자를 읽는 화면과 금판의 두 면
국사편찬위원회 해제는 앞면을 99자, 뒷면을 94자, 모두 193자로 설명합니다. 앞면은 아홉 자씩 열한 줄이지만 뒷면은 줄마다 글자 수가 달라지는 곳이 있습니다. 두 면의 크기가 같다고 글자 수까지 반으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글자를 세어 확인하는 일과 문장을 뜻에 따라 구분하는 일도 서로 다릅니다.
해제는 앞면 글자에 붉은색이 남아 있지만 뒷면에는 남아 있지 않다고도 설명합니다. 뒤에도 색을 입혔을 가능성과 지금 색이 보인다는 사실은 다른 말입니다. 검은 활자로 바꾼 전사문에서는 사라지는, 양면의 보존 상태 차이입니다.
웹페이지에서 국역을 아래로 읽을 때는 실제 금판의 면이 바뀌는 감각이 사라지기 쉽습니다. 한 면에 몇 줄을 배치했는지를 아는 것은 번역문을 다시 물건의 표면에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고대의 사람에게도 오늘의 화면처럼 한 번에 펼쳐진 글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특정한 한 날짜와 오래 이어질 공양의 바람이 작은 금판 안에 함께 놓인 점에 주목합니다. 인명과 날짜를 찾는 읽기는 사건의 좌표를 만들고, 비유와 기원을 따라가는 읽기는 그 사건에 부여한 뜻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제시한 문장 구분은 공개 국역에 근거한 편집자의 독해이며, 고대의 낭독 순서나 실제 의례 절차를 복원한 것은 아닙니다.
참고 자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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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 국립익산박물관 — 금제사리봉영기 ↗https://iksan.museum.go.kr/kor/html/sub04/0401.html?GotoPage=1&dvs_code=&mng_no=23&mode=V
- 국사편찬위원회 — 익산 미륵사지 금제사리봉영기 국역·주석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2_0070_0040_0030
- 국사편찬위원회 — 익산 미륵사지 금제사리봉영기 해제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2_0070_0040_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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