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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북리, 지붕 없는 왕궁을 어떻게 읽을까

큰 건물터만으로 왕궁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부소산 남쪽의 입지, 기초와 도로, 최근 출토 목간을 연결하며 사비 왕궁 연구의 근거를 따라갑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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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6개의 단락
01

산성과 평탄한 대지를 함께 놓기

관북리유적은 부소산성 남쪽 산자락에 자리합니다. 국가유산 지식이음의 조사 해설은 이 위치를 사비도성의 왕궁을 찾는 데 중요한 조건으로 설명합니다. 나성 안 북쪽의 산성과 그 아래의 대지는 각각 떨어진 풍경이면서, 도성을 구성하는 관계 속에서는 연결된 장소입니다. 왕궁이라는 말을 들을 때 완성된 전각의 정면을 상상하기 쉽지만 관북리에서 먼저 만나는 것은 건물의 바닥과 기초, 도로와 물길의 흔적입니다. 지붕이 없으므로 볼 것이 적어진 것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어디에 큰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을 주변 시설과 어떻게 연결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곳입니다.

참고 자료 [1]

02

육십 미터라는 길이가 던지는 질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의 2023년 발표에는 남쪽 대지에서 확인한 길이 약 60미터의 건물터가 등장합니다. 남북으로 긴 장랑식 건물이며, 더 북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시됐습니다. 여기서 확인된 길이와 원래 전체 길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사 구역 안에서 보이는 끝이 곧 옛 건물의 끝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소는 건물들의 배치와 구조를 바탕으로 왕궁의 주요 행사가 열렸던 공간일 가능성을 설명했습니다. 길다는 수치 자체보다 긴 건물을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놓았는지가 해석을 만드는 것입니다. 규모와 방향, 주변 건물의 관계가 모여 공간의 성격을 좁혀 갑니다.

참고 자료 [2]

03

큰 건물보다 먼저 만들어야 했던 땅

같은 조사에서는 건물 아래에서 습지의 뻘층과 그 위에 넓게 흙을 쌓은 대지가 확인됐습니다. 연구소는 연약한 땅 위에 둑을 두르고 내부를 메워 건축할 땅을 마련한 토목 방식을 설명합니다. 또 한 건물터 아래에 다른 건물터가 있어, 먼저 있던 건물이 없어진 뒤 그 자리에 새로 지은 순서도 확인됐습니다. 관북리를 한 시점의 궁궐 배치도로만 보아서는 읽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건물을 세우기 전의 지반 조성, 이전 건물의 사용, 그 뒤의 재건축이 같은 자리에 포개집니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초 아래에도 공사가 있으며, 평탄한 대지 자체가 사람이 만든 중요한 유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참고 자료 [2]

04

작은 나무 조각에 남은 국가 운영

2026년 2월 연구소가 공개한 16차 조사 성과에는 글을 적은 목간과 글씨를 지우려고 표면을 깎으며 생긴 삭설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표된 수량 329점은 삭설을 포함한 값입니다. 완전한 문서가 그만큼 남았다는 뜻으로 읽으면 자료의 성격을 놓칩니다. 연구소는 수로에서 집중 출토된 목간 가운데 경신년과 계해년을 각각 540년과 543년으로 풀이했습니다. 사비 천도 직후에 해당하는 시기를 글의 연대와 출토 맥락으로 살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큰 건물터가 행정의 공간을 생각하게 한다면, 작은 목간은 그 안팎에서 정보를 쓰고 고치던 활동을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게 합니다.

참고 자료 [3]

05

왕궁 연구 뒤에 이어지는 도시의 역사

관북리 발굴보고서 제5권은 백제 유구를 다룬 앞선 보고서들과 달리 통일신라 이후의 흔적을 모아 설명합니다. 보고서 소개에는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건물터, 담장, 배수로, 연못과 가마 등이 남아 이 일대가 오랜 시간 사용되었음이 드러난다고 적혀 있습니다. 백제 왕궁을 찾는 조사에서도 이후 시대의 흔적은 제거할 잡음이 아닙니다. 어떤 층이 위에 있고 어떤 시설이 뒤에 들어섰는지를 알아야 그 아래의 백제 공간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한 장소를 특정 시대의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그곳의 땅은 다음 시대 사람들에게 계속 쓰였습니다. 관북리의 역사는 왕궁의 존재를 밝히는 일과 그 뒤 도시의 시간을 읽는 일을 함께 품습니다.

참고 자료 [4]

06

증거가 쌓일수록 왕궁은 구체적이 된다

초기의 조사 해설은 도로와 연못, 수부라는 글자가 찍힌 기와, 대형 건물터를 왕궁과 관련된 중요한 근거로 들었습니다. 최근 조사에서는 긴 건물과 성토대지, 연대를 풀이할 수 있는 목간이 더해집니다. 각 발견은 왕궁 전체를 한 번에 완성시키기보다 공간과 활동의 일부를 더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복원 그림을 볼 때도 발견한 바닥의 범위와 해석해서 올린 지붕의 범위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관북리를 읽는 재미는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마음대로 채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크기의 증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따라가는 데 있습니다. 땅의 기초, 건물의 배치, 나무에 남은 글이 함께 왕궁이라는 설명에 두께를 더합니다.

참고 자료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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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1.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가유산 지식이음 — 관북리유적, 2005 한국고고학저널 ↗https://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d_idx=18&idx=1&menuIdx=801
  2.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 관북리유적 길이 60m 이상 건물지 조사, 2023.12.1 ↗https://www.nrich.go.kr/gyeongju/boardView.do?bbs_idx=46994&bbscd=33&boardTypeGubun=2&menuIdx=477
  3.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 관북리 유적 궁중 악기와 목간 조사 성과, 2026.2.5 ↗https://www.nrich.go.kr/kor/boardView.do?bbs_idx=48059&bbscd=33&menuIdx=283
  4.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 부여 관북리유적 발굴보고 V, 2011 ↗https://portal.nrich.go.kr/kor/originalUsrView.do?info_idx=7891&menuIdx=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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