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 유물 읽기 · 약 5분 읽기
칠지도, 읽히는 글자와 남겨 둔 빈칸
일본 이소노카미신궁에 전하는 칠지도는 독특한 가지 모양과 금상감 명문을 함께 지닌 철검입니다. 소장 기록, 명문의 판독, 연호의 해석을 나누어 보면 논쟁이 생기는 자리도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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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4개의 단락
발굴품이 아니라 신궁에 전해 온 칼
일본 덴리시의 문화재 안내는 이소노카미신궁의 칠지도를 일본 국보로 소개합니다. 길이는 74.9센티미터이며, 중앙 칼몸 좌우에 가지가 세 개씩 뻗고 양면에는 금상감 글씨가 있습니다. 덴리시는 신궁에 무기류를 보관했던 역사도 함께 설명합니다. 오늘날의 소장처를 나라국립박물관으로 적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전시를 위해 다른 장소에 나오는 일과 소장처는 구별해야 합니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다국어 해설은 1870년대 신관 간 마사토모가 녹 아래의 명문을 확인한 일을 소개합니다. 따라서 ‘발견’이라는 말을 쓸 때도 땅속에서 칼이 출토됐다는 뜻인지, 전해 온 칼에서 글자를 찾아냈다는 뜻인지 분명해야 합니다. 오래 보관된 물건이 새로운 문자 자료가 되는 사건은 발굴과 다른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369년이라는 연대가 나오는 과정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칠지도 국역의 주석은 첫 연호의 ‘和’가 마멸되어 읽기 어렵다고 설명하면서, 동진의 태화 4년인 369년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합니다. 이것은 훼손된 글자의 판독과 연호의 역사적 대조를 거친 해석입니다. 덴리시 안내는 별도로 『일본서기』 신공황후 52년, 곧 372년의 칠지도 관련 기사와 현존품을 연결합니다.
두 연도는 서로 틀린 날짜를 적은 단순한 오류가 아닙니다. 하나는 명문으로 추정하는 제작 시점이며, 다른 하나는 전해 준 사건을 기록한 문헌의 연대입니다. 먼저 글자를 읽고, 그 연호를 특정한 달력에 대응시키고, 나중에 쓰인 문헌의 물건과 현존품을 연결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 연결을 생략한 채 ‘369년 제작, 372년 전달’만 외우면, 어느 부분이 칼에 남아 있고 어느 부분이 역사적 대조인지를 놓치게 됩니다.
한 획과 문장부호가 독해를 바꿉니다
공개 판독문은 읽기 어려운 자리에 결락 기호를 남기고, 교감판독문과 문장부호를 넣은 표점문을 나란히 제공합니다. 뒷면의 ‘王世’ 다음도 논의가 갈리는 자리입니다. 주석은 종래의 ‘子’ 판독을 소개하면서, 남은 가로획을 앞 글자를 반복하는 표시로 보아 ‘王世世’로 읽는 견해를 제안합니다. 이는 그 페이지가 채택한 판독 의견이지 논쟁 전체가 끝났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한 글자가 바뀌면 문장의 주체를 누구로 이해하는지도 달라집니다. ‘읽을 수 없는 글자’와 ‘읽었지만 뜻이 여러 갈래인 글자’를 같은 빈칸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또한 표점문에 보이는 쉼표와 마침표는 문장을 이해하도록 제공한 편집 장치입니다. 오늘의 독자는 칼에 남은 획과 연구자가 구성한 문장을 동시에 보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자료 [4]
나라 사이의 관계를 한 단어로 정리하기 전에
국토교통성 해설은 부식으로 명문의 일부를 읽기 어렵고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고 밝힙니다. 백제에서 건너온 선물이라는 설명을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판독에 따라 양국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함께 적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국역의 주석 역시 ‘侯王’ 등이 든 구절을 곧바로 위아래 관계의 증거로 삼기보다 길상 표현으로 읽는 견해를 설명합니다.
앞면의 ‘百練銕’는 여러 번 단련한 철을 내세우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명문은 물건을 만든 일을 적으면서 그 힘과 가치를 높이는 말도 함께 사용합니다. 글에 담긴 찬탄과 오늘날의 재료 분석 결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글자 ‘百’가 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작업 횟수를 백 번으로 검증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의 관심은 논쟁을 한쪽의 승패로 정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칼의 형태, 실제로 남은 글자, 가능한 문장 구성, 당시 관계에 대한 해석을 차례로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서로 다른 설명을 만났을 때도 ‘무슨 글자를 다르게 읽었는가’와 ‘같은 글자에 다른 뜻을 부여했는가’를 나누어 비교할 수 있습니다. 칠지도의 빈칸은 역사 지식이 멈추는 곳이 아니라, 어떤 증거가 더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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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 일본 덴리시 — 七支刀・鉄盾 중 칠지도 항목 ↗https://www.city.tenri.nara.jp/miryoku/tenrinomiryoku1/bunkazai/10331.html
- 일본 국토교통성 — 칠지도 다국어 해설, R6-00143 ↗https://www.mlit.go.jp/tagengo-db/R6-00143.html
- 국사편찬위원회 — 칠지도 국역·주석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2_0070_0070_0030
- 국사편찬위원회 — 칠지도 교감판독문·표점문·주석 ↗https://db.history.go.kr/id/gskh_002_0070_0070_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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