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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의 길은 왜 다시 놓였을까
겹친 포장도로와 목곽 집수지에서 백제 이후에도 고쳐 쓰인 도시 공간을 읽습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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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한 길, 포개진 길
2016년 한성백제박물관이 공개한 몽촌토성 북문지 조사에서는 성문 안쪽의 삼국시대 포장도로 다섯 기가 확인됐습니다. 평면에서는 길이 격자처럼 공간을 나누지만, 땅을 아래로 살피면 다른 관계가 나타납니다. 북문과 일직선으로 연결된 1호 도로는 백제가 처음 만든 뒤 그 위에 다시 길을 냈고, 고구려도 증개축해 사용했습니다. 조사 발표는 이를 세 차례의 축조로 설명합니다. 같은 방향의 길이 여러 높이에서 나타나는 것은 지도를 잘못 겹친 결과가 아니라, 통로를 거듭 사용한 시간의 흔적입니다.
이 발표에서 도랑을 사이에 둔 여러 노면은 ‘1로 3도’일 가능성으로 제시됐습니다. 이는 길이 옆으로 나뉜 구조에 관한 해석으로, 세 번 고쳐 쌓았다는 시간 순서와는 다릅니다. 북문 안쪽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회전부도 주목할 만합니다. 다만 발표가 고구려 이후 시기에 덧붙인 것으로 설명한 부분이므로 이를 백제의 회전교차로라고 소개하면 시기가 뒤바뀝니다. 성문이라는 통과 지점은 이어졌지만, 그 안팎을 연결하는 길의 표면과 교차 방식은 바뀌었습니다. 한 장소를 계속 쓴다는 것은 옛 시설을 그대로 두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참고 자료 [1]
두 성의 연결
박물관의 몽촌토성 발굴조사 소개는 풍납동 토성과 몽촌토성을 잇는 폭 10m의 대형도로를 주요 성과로 제시합니다. 몽촌토성을 홀로 떨어진 방어시설로 보던 시선을 두 성 사이의 연결로 옮기는 발견입니다. 성문은 벽이 끊긴 자리이지만, 도로의 관점에서는 성 안과 바깥을 이어 주는 접점입니다. 그 길을 통해 도시를 생각하면 중요한 것은 개별 성벽의 모양뿐 아니라 서로 다른 공간 사이의 관계가 됩니다.
같은 조사 소개는 475년 한성 함락 뒤 고구려가 몽촌토성을 남방 진출의 거점으로 고쳐 썼으며, 553년 신라 진출 이후의 도로와 창고는 물류기지의 성격을 시사한다고 설명합니다. 왕도가 바뀌었다고 지형과 출입로의 쓸모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새 사용자는 기존 장소를 받아들이면서 필요한 시설을 보탰습니다. 몽촌토성의 길이 같은 자리에 다시 놓인 까닭은 이러한 공간의 지속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각 공사를 지시한 사람이나 개별 도로의 모든 용도가 밝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참고 자료 [2]
물과 농사의 흔적
2023년 11월의 공식 조사 발표는 당시 발굴 중인 집수지를 고구려가 축조하고 사용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집수지는 성 안의 용수를 확보하고 식수를 보관하기 위한 시설로 설명됩니다. 이곳에서 동식물의 잔해와 나무 등 여러 유기질 자료가 함께 나왔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물을 담는 공간의 흔적은 성의 유지에 필요한 시설과 그 주변 생활을 동시에 연구하게 합니다.
그해 6월에는 목제 쟁기가 나왔습니다. 2020년과 2022년의 발견에 이은 세 번째 사례라는 것이 당시 발표의 기준이며, 세 쟁기의 형태도 서로 달랐습니다. 2023년 출토품은 몸체와 날, 손잡이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손잡이에는 묶는 줄로 추정되는 유기물도 확인됐습니다. 발표는 땅을 가는 부분뿐 아니라 부재를 연결하는 방식까지 연구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두었습니다. 성에서 농기구가 나왔다는 사실은 군사와 농업을 별개의 풍경으로만 보는 인상을 바꿉니다. 여기서 확실히 만나는 것은 성 내부의 물 시설과 그곳에 남은 생활 도구의 결합입니다.
참고 자료 [3]
고구려의 글
2022년 발표가 다룬 목간도 2021년 4월 집수지에서 발견됐습니다. 박물관은 글이 작성된 시점을 551년 이전으로 보고 고구려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백제 왕성이라는 유적 이름과 그 안에서 나온 문서의 소속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목간은 글을 쓰던 활동을, 길과 집수지는 공간을 유지하던 활동을 생각하게 합니다. 두 자료를 같은 시대의 장면으로 무조건 합치기보다 각각의 조사 판단을 따라가면 도시를 고쳐 쓴 사람들의 시간이 드러납니다. 몽촌토성이 보여주는 것은 한 번 완성된 왕성의 정지 화면이 아닙니다. 이전 장소의 통로와 물을 새로운 사용자가 다시 조직한 과정입니다. 그 때문에 백제의 공간을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위에 남은 다음 시대의 흔적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참고 자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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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 한성백제박물관 — 몽촌토성 북문지 포장도로 조사 성과, 2016.11.14 ↗https://baekjemuseum.seoul.go.kr/m/board/index.jsp?boardid=SBM0504000000&cpage=9&d_s_que=&mmode=content&mpid=SMM0503000000&pid=12513&skin=board&strsearch=
- 한성백제박물관 — 백제 왕도 발굴조사, 몽촌토성 ↗https://baekjemuseum.seoul.go.kr/contents.jsp?mpid=SBM1004090100
- 서울시·한성백제박물관 — 몽촌토성 집수지 목제 쟁기 출토, 2023.11.21, 첨부 PDF 1~2쪽 ↗https://culture.seoul.go.kr/culture/bbs/B0000001/view.do?menuNo=200051&nttId=11191&pageIndex=100
- 서울시·한성백제박물관 — 몽촌토성 집수지 목간 출토 발표, 2022.1.18 ↗https://culture.seoul.go.kr/culture/bbs/B0000001/view.do?menuNo=200051&nttId=4023&pageIndex=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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