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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의 43m, 흙은 어떻게 성벽이 되었을까

동벽의 밑변과 중심 토루, 서벽의 판축 구조물에서 축성 순서를 읽습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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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순서 4개의 단락
01

성벽의 밑변

풍납토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두른 성이 아니라 한강변 평지에 쌓은 성입니다. 한성백제박물관은 동쪽 성벽의 아래 폭을 43m로 소개하고, 원래 높이는 약 9~11m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때 43m는 성 위를 걸을 수 있는 길의 너비가 아니라 성벽이 땅을 차지하는 아래쪽 폭입니다. 높은 벽을 상상하던 시선을 밑으로 옮기면, 성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넓은 땅을 구조물로 바꾸는 공사였는지 드러납니다. 동벽의 이 수치를 곧바로 모든 구간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풍납토성의 규모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는 충분합니다.

성의 전체 윤곽과 한 구간의 단면은 서로 다른 것을 설명합니다. 박물관은 평면을 타원형 또는 배 모양으로 설명합니다. 평면이 성 안에 둘러싸인 공간을 보여준다면 단면은 그 경계를 무엇으로, 얼마나 두껍게 만들었는지 보여줍니다. 지도에서 가느다란 선으로 보이던 성벽도 옆으로 잘라 생각하면 넓은 바닥을 가진 입체입니다. 그래서 풍납토성의 크기는 높이 하나로 요약되지 않습니다. 도시의 둘레를 잇는 긴 방향과 흙을 받치는 두꺼운 방향을 함께 갖습니다.

참고 자료 [1]

02

중심 토루와 양옆

1999년 동벽 조사 결과를 정리한 2002년 보고서의 공개 요약에는 축성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먼저 원래 땅을 고르고 약 50cm 두께의 뻘흙을 깐 뒤, 폭 약 7m·높이 약 5m인 사다리꼴 중심 토루를 쌓았습니다. 이어 안쪽과 바깥쪽에 다른 토루를 비스듬히 덧붙였습니다. 사질토와 모래, 점토를 다진 흙, 뻘흙 등이 그 재료였습니다. 성벽을 이루는 흙은 처음부터 완성된 큰 덩어리로 부어진 것이 아니라, 중심과 양옆이라는 관계를 만들며 넓어졌습니다.

중심 토루의 너비는 완성된 성벽 전체의 너비와 다릅니다. ‘토루’라는 낯선 이름을 성벽 안의 한 몸체로 이해하면, 서로 다른 치수가 한 유적 설명에 함께 나오는 까닭도 분명해집니다. 일부 조사 구간에는 흙과 식물 재료를 번갈아 놓은 층, 그 사이에 놓인 가로·세로 목재 구조물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안팎 토루 위를 돌로 마감한 부분이 확인됐습니다. 풍납토성을 흙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요 재료를 말하지만, 실제 공정에는 나무와 돌도 참여했습니다. 흙의 종류, 층의 경사, 목재가 놓인 위치를 합쳐 읽어야 한 단면에 남은 공사 순서가 보입니다.

참고 자료 [2]

03

서벽의 판축 구조물

2021년 12월 삼표산업 풍납공장 일부 반환부지에서 시행한 시굴조사는 서벽을 만드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듬해 공개된 발표는 사각형 틀 안에 성질이 다른 흙을 일정한 두께로 번갈아 넣고 다지는 판축기법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만든 한 흙덩어리를 판괴라고 부르며, 앞뒤와 좌우로 판괴를 계속 이어 성벽을 완성합니다. 판괴는 현장에서 틀을 이용해 다져 만든 흙의 단위입니다.

이 구간에서도 중심 토루에 여러 차례 흙몸체를 덧붙인 구조와 안쪽의 돌 마감이 확인됐습니다. 연구진은 구조뿐 아니라 성벽이 뻗는 방향을 기존 발굴 구간과 대조해, 남성벽에서 서성벽 조사 현장과 공장 부지로 이어지는 흐름을 확인했습니다. 떨어진 두 조사 지점이 같은 성벽에 속하는지는 흙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단면의 짜임, 마감 재료, 진행 방향이 함께 근거가 됩니다.

서벽의 사례는 풍납토성의 규모를 설명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완성된 벽의 크기를 넘어서 어떤 틀로 흙을 다지고 그 단위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묻게 합니다. 거대한 벽을 가능하게 한 것은 흙의 양뿐 아니라 작업의 순서였습니다.

참고 자료 [3]

04

성벽 안의 집자리

성벽의 두께에서 성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생활 공간의 구체적인 구조를 만납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발굴조사 소개에 따르면 1997년 풍납토성 내부 조사에서는 땅을 파서 만든 집자리 열아홉 기와 저장·폐기용 구덩이 등이 확인됐습니다. 집자리는 육각형 평면, 앞쪽 짧은 벽에서 돌출한 출입시설, 점토와 판석을 사용한 부뚜막을 특징으로 합니다. 집자리에서는 성벽과 달리 입구와 조리시설의 배치가 공간을 읽는 중심이 됩니다.

이 집자리들은 거대한 성의 안쪽이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성벽의 단면은 경계를 구축한 공정을, 집자리의 평면은 그 경계 안에서 생활할 자리를 만든 방식을 설명합니다. 높고 두꺼운 벽을 세우는 기술과 사람들이 드나들고 불을 쓰는 공간을 조직하는 기술이 함께 한성의 구체적인 모습을 이루었습니다.

참고 자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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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1. 한성백제박물관 — 주변 유적정보, 서울 풍납동 토성 ↗https://baekjemuseum.seoul.go.kr/contents.jsp?mpid=SBM0205000000
  2.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풍납토성Ⅱ 동벽발굴조사보고서 공개 요약, 2002 ↗https://portal.nrich.go.kr/kor/originalUsrView.do?info_idx=200&menuIdx=565
  3.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 풍납공장 일부 반환부지 서성벽 시굴 성과, 2022.1.4 ↗https://www.nrich.go.kr/seoul/boardView.do?bbs_idx=43060&bbscd=33&boardTypeGubun=1&menuIdx=803
  4.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발굴조사, 서울 풍납동 토성 주거지 ↗https://www.nrich.go.kr/kor/page.do?menuIdx=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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