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 유물 읽기 · 약 4분 읽기
왕비의 은팔찌, 안쪽에 남은 제작 기록
겉면의 용과 안쪽의 17자. 날짜·호칭·무게 단위를 통해 장신구가 기록이 되는 과정을 읽습니다.
글 컬처스탭 · 자료 확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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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루는 유물
- 무령왕비 은팔찌
- 소장기관
- 국립공주박물관
- 출토지
- 공주 무령왕릉, 왕비의 왼팔 쪽
이 글의 순서 4개의 단락
한 쌍에 두 번 남긴 글
무령왕릉의 왕비 왼팔 쪽에서는 은팔찌 한 쌍이 겹쳐 나왔습니다. 두 점은 각각 바깥지름 8센티미터, 안지름 6센티미터이며 안쪽에는 동일한 내용의 명문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해제는 두 글씨를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 한 쌍은 같은 문장을 두 번 간직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해제에 기록된 무게도 각각 167.022그램과 167.230그램으로 가깝습니다. 같은 치수의 두 물건에서 글씨와 무게를 함께 비교할 수 있습니다. 명문은 같지만 측정값까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한 쌍의 관계와 두 개별 물건의 차이가 함께 남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글씨를 쓴 사람이 같다고 보는 것과 그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 사이에 있습니다. 해제의 찬자·서자·각자 항목은 미상입니다. 글의 내용으로 제작자를 논의할 수 있어도 그가 직접 문안을 짓고 쓰고 새겼다고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장신구를 만든 일과 글을 남긴 일을 구별하면, 명문이 알려주는 사람의 범위도 정확해집니다. 두 점을 함께 읽는 이유는 같은 정보를 반복해서 확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글씨와 물건의 관계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기록관 · 공공누리 제1유형 · 원본 기록 ↗https://portal.nrich.go.kr/kor/textbookUseCulturalUsrView.do?idx=3&menuIdx=1229&tab=
한 쌍 전체가 아니라 한 점의 사진입니다. 안쪽 글자 일부만 보이므로 명문 전체는 아래 연구 원문에서 확인합니다. 제공 파일의 크기를 넘겨 확대하지 않습니다.
참고 자료 [1]
용은 솟고, 글자는 들어갑니다
은띠의 단면은 반원형입니다. 둥근 바깥쪽에는 혀를 길게 내민 용 두 마리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고, 용의 발에는 발톱이 셋씩 있습니다. 손목에 닿는 안쪽 가장자리에는 작은 점을 새긴 장식이 이어집니다. 글씨는 안쪽을 둘러 한 줄로 새겼으며, 서체는 해서입니다. 국가유산 지식이음은 용무늬를 양각, 글씨를 음각으로 설명합니다. 돌출된 형상과 들어간 획이 서로 다른 정보를 맡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판독문은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卅主耳’라는 17자입니다. 바깥에서는 용의 형상을, 안쪽에서는 장식의 테두리와 글의 배열을 함께 읽게 됩니다. 안쪽에도 장식이 있으므로 앞면은 아름답고 뒷면은 실용적이라는 단순한 구분으로는 부족합니다. 팔찌를 꾸미는 일과 기록을 남기는 일이 두 면으로 완전히 갈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겉면의 조형과 내면의 문장을 함께 지닌다는 점이 이 팔찌의 특별한 정보 구조입니다.
참고 자료 [3]
경자년을 520년으로 읽는 근거
명문의 앞부분은 경자년 2월의 제작을 전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다리를 장인의 이름으로 추정합니다. 팔찌에 오늘날의 연도 숫자 520이 직접 새겨진 것은 아닙니다. 경자년의 후보 가운데 왕비의 생애를 고려하여 사망 여섯 해 전인 520년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대부인이라는 호칭도 다른 자료와 연결됩니다. 왕비의 묘지에는 왕대비라고 적혀 있어 두 기록의 표현이 다릅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대부인을 무령왕 생존기의 왕비 호칭으로 해석합니다. 팔찌와 묘지를 함께 읽으면 제작과 장례라는 서로 다른 시점이 드러납니다.
참고 자료 [2]
무게 단위와 문장의 끝
마지막의 ‘主耳’에는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두 글자를 합쳐 무게 단위로 보는 견해가 있었지만, 국사편찬위원회는 主를 무게 단위로, 耳를 문장 종결사로 나누는 해석이 널리 수용된다고 설명합니다. 主가 중국의 銖에 해당하는지, 백제 독자 단위인지는 별도로 논의됩니다. 230을 곧바로 그램으로 바꿀 수 없는 이유입니다.
겉면의 용이 장신구의 형상을 이룬다면 안쪽의 글은 물건을 사람과 시간에 묶어 둡니다. 실제 착용일이나 선물한 사람까지는 알려주지 않지만, 왕비에게 속한 물건을 특정한 제작 시점에 연결합니다. 두 면을 함께 읽을 때 은팔찌는 왕릉의 장식품을 넘어 밀도 높은 역사 자료가 됩니다.
참고 자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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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과 연구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대 사료 DB — 무령왕비 은팔찌 해제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2_0070_0020_0010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대 사료 DB — 무령왕비 은팔찌 국역문·주석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gskh_002_0070_0020_0030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가유산 지식이음 — 무령왕비 은팔찌 개관·판독문 ↗https://portal.nrich.go.kr/kor/ksmUsrView.do?ksm_idx=2564&menuIdx=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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